“혈액형이 같고 머리숱도 많은 가족이 있는데, 그분의 머리카락을 저에게 옮겨 심을 수 있을까요?”
얼마 전 병원을 찾아온 50대 초반 환자의 질문이다. 그 사람의 머리 상태를 봤더니 귀 옆과 뒤 머리카락도 탈모가 진행돼 자신의 머리를 이식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자신이 생각해 봐도 머리카락이 없으니 가족의 머리카락을 심는 것까지 생각했나 보다. 안타깝게도 이제 그 사람은 모발 이식을 통한 탈모 치료가 불가능하다.
모발은 우리 몸의 가장 작은 장기(臟器)다. 모발이식은 다른 사람의 심장이나 간을 이식하는 것과 달리 자신의 모발을 이식하는 ‘자가이식’이다. 그렇다면 심장이나 간은 다른 사람의 것을 이식할 수 있는데 왜 모발은 안 될까.
이는 신체가 가진 항원·항체반응, 즉 거부반응 때문이다. 심장이나 간과 같은 중요한 장기는 이식 후 거부반응을 피하도록 면역 억제제를 복용하지만 이때는 약물의 부작용이 심할 수 있다. 모발이식은 생명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이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모발이식은 자신의 후두부 모발을 이용하게 되는데, 자신의 몸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부반응이 없다. 피부와 모발은 항원성이 매우 강한 조직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내 몸에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내 머리카락을 소중히 지키는 방법밖에 없다. 결국 탈모다 싶으면 바로 진단을 받자. 탈모 초기에는 약물치료로 개선할 수 있다. ‘프로페시아’라는 약을 통해 치료하는 것으로 하루에 한 번씩 머리에 좋은 비타민을 먹인다고 생각하고 먹으면 된다.
약을 통해 최대한 탈모를 지연시키고 세월이 지나 어쩔 수 없이 새로 나는 모발보다 빠지는 모발이 많아져 탈모가 진행되면 그때 모발이식을 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모발이식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모낭군 이식술’이 적합하다. 모낭은 ‘머리카락 주머니’로 머리카락, 지루샘, 털을 세우는 근육, 미세혈관과 신경 등이 섬유성 띠로 묶여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모낭에는 한 개에서 네 개의 머리카락이 있다. 이런 주머니를 통째로 이식하기 때문에 머리카락 한 개씩을 이식하는 ‘단일모 이식’에 비해 많은 모발을 이식할 수 있다. 또한 정상적인 모낭 단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이식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모발이식 효과를 볼 수 있다. 요즘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모낭군 단위 이식술’이 모발 이식의 표준으로 점점 자리 잡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개그맨 김한석 씨의 인터뷰 기사를 봤는데, 이 칼럼을 읽는 여러분이 참고할 만한 내용이 있어 소개한다.
“내 인생에서 남의 얘기라고 생각했던 두 가지는 불임과 탈모다. 그런데 그 두 가지가 다 나한테 생기더라. 탈모는 머리에 좋다는 온갖 것을 해보지 않은 게 없다. 검은 콩에서부터 두피마사지, 탈모 방지 샴푸까지…. 하지만 인생 한방이다. 거기에 들일 돈을 모아 한 방에 머리카락 이식술을 받는 게 최고다.” 먼저 경험한 사람의 얘기는 소중하다.
한경비즈니스 독자 여러분, 새해에는 모두 득모(得毛)하시길 바랍니다.
안지섭 닥터안 모발이식 전문병원 원장
[본 기사는 한경 Business(12,01,11) 기사입니다]